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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by 잔듸오 2021. 1. 21.

 

2021년 신춘문예의 새로운 당선작이 궁금하여 찾아보았다. 당선작을 대하며 읽어보니 마음이 새로운 문장력으로 환해지며 신선해지는 기분이 든다. 예년보다 많은 응모작이 접수되었다고 한다. 다양한 장르에서 풍부하게 올라온 언어들은 내 마음을 보듬어 주 듯 새로운 곳으로 안내한다. 2021년 1월 7일 기준 발표된 신춘문예 당선작과 당선자, 당선소감, 심사평이 정리된 내용을 내 블로그로 옮겨와 보기로 했다. 
*언론사 명은 가나다순 정렬이며 당선작이 공식 업로드되어있는 경우에 한해 작품명에 링크를 걸어두었다고 한다.

출처 : 뉴스페이퍼(http://www.news-paper.co.kr) 

아래의 내용은 청계 문학회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다음 카페

<2021 동아 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여름의 돌

이근석​

나는 토끼처럼 웅크리고 앉아 형의 작은 입을 바라보았다.
그 입에선 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형한테선 지난여름 바닷가 냄새가 나,

이름을 모르는 물고기들 몇 마리 그 입속에 살고 있을 것만 같다.

무너지는 파도를 보러 가자, 타러 가자, 말하는
​형은 여기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미래를 이야기했다. 미래가 아직 닿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형을 들뜨게 했다.

미래는 돌 속에 있어, 우리가 아직 살아보지 못한 이야기가 번져있어, 우리가 미래로 가져가자,

그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본다.

그동안 우리는 몇 번 죽은 것 같아.

여름, 여름 계속 쌓아 올린 돌 속으로 우리가 자꾸만 죽었던 것 같아.

여기가 우리가 가장 멀리까지 온 미래였는데 보지 못하고 우리가 가져온

돌 속으론 지금 눈이 내리는데
​내리는 눈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내리는 눈 속으로 계속 내리는 눈 이야기.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우리가 우리들 속으로

파묻혀가는 이야기들을 우리가 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계속
전화벨이 울리고 있다


이근석
-1994년 충남 논산 출생
-2012년 고등 검정고시 합격


<2021 한경 신춘문예 시 당선작>

유실수(有實樹)

차원선​

너의 눈 안에는 열매를 맺으려 하는 나무가 있다
​너의 눈에 나무를 심은 사람이 저기 소각장에 앉아 있다
​자신의 옷을 다 태우고도 헐벗은 너를 보고 있다
​멀뚱히 있는 너와 떨어진 잎을 한데 덮는다

앙상해지도록
베고 누웠다
​잔향 더미로 만든 모래시계
마른 낙엽을 주워 구덩이로 몰아넣었다

왜 내 얘기를 듣고 있어요?
낯선 사람인가 봐 쓸쓸하다고 하면 데려갈 텐데
​그대로 있어요

반딧불이 무리 지어 올리는 온도
올라가는 건물

빈 곳은 비어있었던 적이 없고
마지막으로 옮긴 불씨 조각이 다 자란 나무의 잎에 옮겨 붙는다
​오랫동안 그를 알았다
​열매를 남긴 나무, 앨범에 적히고
눈 안에 마른 씨앗을 품던 자리가 바스러져 날아간다
​몇은 땅으로 몇은 모를 곳으로


<2021 경향 신춘문예 시 당선작>

노이즈 캔슬링

윤혜지

우리는 한껏 미세해진 우리를 내려다보며 기내식을 먹었다 책을 뒤적거렸다

구식(舊式) 동물에 대한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그것은 동물들이 있다, 로 시작된다

유기인지 실종인지 자연발생인지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구식의 동물들이 발견되었고
​그들은 제각기 살고 있다

매일 똑같은 구절을 읽어줘도 너는 언제나 놀라워한다
​연하게 와서 끊임없이 훼손되는 마음으로
​침목(枕木)을 고른 적이 있다 비를 맞고 볕을 쪼이길 반복한 나무토막들 위로

뜨거운 기차가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달렸다 모든 것이 멈추면 아웃렛에 가서

새 셔츠를 사고 카페에 앉아 아주 뜨겁고 단맛이 나는 차를 마셔야지 하다가

자신이 데려올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영영 잊어버린 사례도 있었다

이것이 소음으로 소음을 지워내는 방식입니다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각자 잊어버린 것을 접어 올리고

등받이를 세우고 얌전히 차례를 기다렸다

가팔라지는 날개
​여러 개의 의자에 앉아야만 생각나는 것이 있다
​이국의 빛과 온도
잎사귀와 해변의 선량한 사람들
​규칙적인 것은 예상 가능해서 지울 수 있다 다만 어떤 통화 소리
바빠, 계속 바빠서 그래 배회하듯 하는 사과
그것은 틈입이다

나 좀 안아줘, 같은 말은 꼭 돌아누우면서 하는
​어떤 나쁨은 너무 구체적이어서
꼭 대낮 같다

물결이 물결로
공들여 썩는 냄새를 맡았다
​그것을 생각할 때
깨끗한 공기 속으로 무언가 빠르게 나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눈앞에서 파도가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저마다의 계단처럼


<2021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단순하지 않은 마음

강우근​

별일 아니야,라고 말해도 그건 보이지 않는 거리의 조약돌처럼
우리를 넘어뜨릴 수 있고 작은 감기야,라고 말해도 창백한 얼굴은
일회용 마스크처럼 눈앞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눈병에 걸렸고, 볼에 홍조를 띤 사람이
되었다가 대부분의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병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걸어오는 우리처럼 살아가다가 죽고 만다.
​말끔한 아침은 누군가의 소독된 병실처럼 오고 있다.

저녁 해가 기울 때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고 감자튀김을 먹는
사람들은 축구 경기를 보며 말한다. “정말 끝내주는 경기였어.” 나는
주저앉은 채로 숨을 고르는 상대편을 생각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아서

밤의 비행기는 푸른 바다에서 해수면 위로 몸을 뒤집는
돌고래처럼 우리에게 보인다.

매일 다른 색의 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모이고 흩어지고 있다.

버스에서 승객들은 함께 손잡이를 잡으면서 덜컹거리고,
승용차를 모는 운전자는 차장에 빗방울이 점점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편의점에서 검은 봉투를 쥔 손님들이 줄지어 나오지.

돌아보면 옆의 사람이 없는, 돌아보면 옆의 사람이 생겨나는.
어느새 나는 10년 후에 상상한 하늘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쥐었다가 펴는 손에 빛은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었다. 보고 있지
않아도 그랬다.

내가 지나온 모든 것이 아직 살아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2021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고독사가 고독에게

박소미
​​
나는 자궁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태동을 알아채는 침묵 이전의 기억 밑으로 밑으로, 웅크리고 있다 두 팔로 무릎을 감싸 안고 재생에 몰두한다 어느 애도가 부재를 지나 탯줄로 돌아올 때까지, 타자의 몸속을 오가는 이 반복은 고고학에 가깝다 생환의 뒷면은 그저 칠흑 덩어리일까 벽과 벽 사이 미세한 빗살로 존재할 것 같은 한숨이 어둠 안쪽 냉기를 만진다 사금파리 녹여 옹기 만들 듯 이 슬픔을 별자리로 완성케 하는 일, 아슴푸레 떨어지는 눈물도 통로가 될까 북녘으로 넘어가는 해거름이 창문 안으로 울컥, 쏟아져 내린다 살갗에 도착한 바람은 몇 만 년 전 말라버린 강의 퇴적, 불을 켜지 않아도 여기는 발굴되지 않는 유적이다 잊기 위해 다시, 죽은 자의 생애를 읊조려본다 그래 다시, 귀를 웅크리지 태아처럼, 점점 화석이 되어가는 기분이야 떠나면서 자꾸 뒤를 돌아본다 방 안이 점점 어두워진다


<2021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변성기

김수원​

접시는 바꿔요
어제 같은 식탁은 맞지 않아요
초승달을 키우느라 뒷면이었죠
숨기고 싶은 오늘의 숲이 자라요 깊어지는 동굴이 있죠
전신 거울 앞에서 말을 터요
알몸과 알몸이 서로에게
내 몸에서 나를 꺼내면
서로 모르는 사람
우리는 우리로부터 낯설어지기 위해 자라나요
엄마는 앞치마를 풀지 않죠
지난 앨범 속에서 웃어야지 하나, 둘, 셋, 셔터만 누
르고 있죠
식탁을 벗어나요
눈 덮인 국경을 넘어
광장에서의 악수와 뒤집힌 스노볼의 노래, 흔들리
는 횡단 열차와 끝없이 이어지는 눈사람 이야기, 말을
건너오는 눈빛들과 기울어지는 종탑과 나무에서 나무와 나무까지 밝아지는
모르는 색으로 달을 채워요
접시에 한가득
마트료시카는 처음 맛본 나의 목소리
달 아래, 내가 나를 낳고 나는 다시 나를 낳고 나를 낳고
내가 누구인지 누구도 모르게


<2021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에

신이인
​​
오리너구리를 아십니까?
오리너구리,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아에게 아무렇게나 이름을 짓듯
강의 동쪽을 강동이라 부르고 누에 치던 방을 잠실이라 부르는 것처럼

나를 위하여 내가 하는 일은
밖과 안을 기우는 것, 몸을 실낱으로 풀어, 헤어지려는 세계를 엮어,
붙들고 있는 것

그러면 사람들은 나를 안팎이라고 부르고
어떻게 이름이 안팎일 수 있냐며 웃었는데요

손아귀에 쥔 것 그대로
보이는 대로

요괴는 그런 식으로 탄생하는 겁니다
부리가 있는데 날개가 없대
알을 낳지만 젖을 먹인대
반만 여자고 반은 남자래

강물 속에서도 밖에서도 쫓겨난 누군가
서울의 모든 불이 꺼질 때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알고 계셨나요?
기슭에 떠내려오는 나방 유충을 주워 먹는 게 꽤 맛있다는 거

잊을 수 없다
모두가 내 무릎에 올려두었던 수많은 오리너구리
오리가 아니고 너구리도 아니나
진짜도 될 수 없었던 봉제 인형들
안에도 밖에도 속하지 못한
실오라기
끊어낼 수 없는
주렁주렁
전구 없는 필라멘트들

불을 켜세요
외쳐보는 겁니다
아, 이상해.


신이인
1994년 서울에서 출생,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21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언더독

변혜지​

이 세계를 네가 구했어.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나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린다. 폐허가 된 도시에 둘러싸여서,

꿈속의 나는 아름다웠다. 나의 아름다움이 나의 의지와 무관하였다.
​눈을 빼앗길 만한 장면이어서 나는 이 세계와 어울리는 음악을 마련하였다.

화관(花棺) 속에 두 손을 가슴에 모은 내가 누워있었고,

살아남은 모든 이들의 행렬로 거리가 잠시 가득 찼다.
​나는 어떻게 이 세계를 구했나. 나의 궁금증이 이 세계와 무관하였다.

연인이 내게 입을 맞추며 엄숙하게 사랑을 맹세하였고,
​잠들었던 관객이 영화의 결말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듯이, 나는 영문 모를 격정에 휩싸였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건 네가 아니야. 내가 꿈속의 나를 향해 소리치자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일제히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행렬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의 격정이 나와 무관하였고,

화관에 누운 내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비로소 이 꿈의 구성 방식을 알 것 같았고,
​나는 이 세계에 두고 나가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변혜지
-1991년 서울 출생
-동국대 문예창작과 졸업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 수료